불국사경내(佛國寺境內) 유적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혜공왕 10년(774)에 완공되었다.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청운교·백운교, 석가탑·다보탑, 연화교·칠보교,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금동비로자나여래좌상 등의 수 많은 귀중한 유적들이 남아있다. 불국사는 풍부한 상상력과 예술적인 기량이 어우러진 불교미술의 정화로 1995년에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국보 제 21호 불국사삼층석탑(佛國寺三層石塔)
종목 |
: 국보 제 21호 |
명칭 |
: 불국사삼층석탑 |
분류 |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
수량/면적 |
: 1기 |
지정일 |
: 1962.12.20 |
소재지 |
: 경주시 진현동 15 불국사 |
시대 |
: 통일신라 |
불국사 삼층석탑과 불국사다보탑(국보 제20호)은 절의 대웅전 앞 뜰 동서쪽에 각각 세워져 있는데, 서쪽탑이 삼층석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이 탑과 다보탑의 관계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다보여래와 석가여래가 나란히 앉아 석가여래의 설법을 다보여래가 증명한다는데 연유한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신라 전형양식의 석탑은 이 석가탑에 이르러 최고로 정제된 완숙미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은 각부의 비례가 훌륭하고 전체적으로 빈틈없이 조화된 구성과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에서 찾을 수 있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떠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 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파손되어 1973년 남원 실상사삼층석탑(보물 제37호)의 머리장식을 본떠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를 창건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되며, 그 후 원래 모습대로 잘 보존되었으나, 안타깝게도 1966년 9월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다. 그 해 12월 탑을 완전하게 복원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 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 제126호)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