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서원내(玉山書院內) 유적
옥산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이곳은 선조 5년(1572)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권덕린과 지방 유림의 후원으로 창건하였고 그 다음해에 임금에게 ‘옥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현재 사적 제 154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 제 586호 이언적수필고본일괄(李彦迪手筆稿本一括)
종목 |
: 보물 제 586호 |
명칭 |
: 이언적수필고본일괄 |
분류 |
: 기록유산/전적류/필사본/사본류 |
수량/면적 |
: 13책 |
지정일 |
: 1975.05.01 |
소재지 |
: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7 옥산서원 |
시대 |
: 조선시대 |
조선 중종 때의 유학자이며 정치가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이 명종 2년(1547)에서 명종 8년(1553) 사이에 직접 쓴 저술이다.
이언적은 경주에서 태어나 외숙인 손중돈(孫仲暾)에게 글을 배웠으며 중종 9년(1514)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하였다. 사헌부 지평·장령·밀양부사 등을 거쳐 중종 25년(1530)사간원 사간에 임명되었는데, 김안로의 재등용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나 귀향한 후 자옥산에 독락당(獨樂堂)을 짓고 학문에 열중하였다. 김안로 일파가 몰락한 뒤 다시 정치에 나섰고, 후에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서 그의 송덕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1547년 조작된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제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책을 썼으나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세우는데 선구적 인물로,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원이다.
지정된 유물들은『속대학혹문』1책,『대학장구보유』1책,『봉선잡의』1책,『중용구경연의』9책,『진수팔규』1책 등 모두 13책이다. 특히『중용구경연의』는 정조가 친필로 쓴 ‘제선정회재속대학혹문권수’를 붙이고 있어 그 가치를 더욱 높게 하였다.
현재 이것들은 옥산서원 어서각에서 보관하고 있다.